도덕경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사상과 삶의 방식을 ‘도’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이런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도가라고도 부릅니다. 집 ‘가’를 붙인 것은 이 글자가 무리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가 사상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이에 대해 아예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속세에서 인위적인 억지를 피하고 대신 자연의 이치를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면 유가적으로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르고 차별하는 것보다 유연하고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라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생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인들과 경쟁, 갈등 속에서 살아가야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산속에들어가 문명을 뒤로하고 부족을 만들어 10~20명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들을 읽어보고, 현실에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도덕경의 글은 대체적으로 깊고 사색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워낙에 해석이 다양합니다. 반면에 장자의 글은 호방하며 수다가 많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장자는 노자에 비해 다양하고 절묘한 비유에 능했습니다. 대체로 노자의 글은 짧고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함축적이었기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자의 글은 이야기가 길고 유쾌하며 흥미로운 비유가 많아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노자의 글은 시에 가까웠지만 장자의 글은 소설에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저서를 철학책이 아닌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해석하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송나라의 몽읍(蒙邑)에서 출생했습니다. 장자의 이름은 주(周)이고, 자는 자휴(子休)이며, 칠원성(漆園城)의 말단 관직에 있었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 또는 남화노선이라고 부르기도한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인물이 바로 장자가 있습니다.
장자는 문학적이며 비유를 즐겼습니다. 장자가 현실을 비틀어 표현하려고 한 데에는 전국 시대의 독특한 사회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자에 한 대목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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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의 환이라는 관리가 마루 위에서 철커덕거리며 죽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서는 수레바퀴 전문기술자 윤편이 나무를 깎아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망치와 끌을 슬그머니 내려놓더니 환에게 다가갑니다.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지금 읽고 계시는 게 무슨 내용인가요?”
“아, 이거. 성인의 말씀이지.”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신지요?”
“아니네. 이미 죽었네.”
“그럼 대감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 사람의 찌꺼기군요.”
“아니, 천한 놈이 감히 어디다 대고 시비냐? 네 말이 일리가 있도록 설명해 보거라.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보전치 못하리라.”
“미천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수레바퀴는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거워 못 쓰고, 덜 깎으면 빡빡해 못 쓰지요. 어느 정도 깎아야 하는지는 손으로 더듬고 마음으로 느껴 알 수 있을 뿐이지요. 그것을 입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지요. 물론 치수가 있습니다. 허나 그 정확한 감이란 것은 제 자식에게도 말로 깨우쳐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흔이 넘은 지금도 이렇듯 손수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죠. 그 옛사람도 아마 알맹이는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대감께서 읽고 계신 것을 옛사람의 찌꺼기라고 감히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위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책이 글쓴이의 모든 지혜를 담아낼수 없다는 한계를 잘 설명해 주는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로운 비유입니다.
하지만 장자가 어떤 연유로 이런 비유를 사용했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 비유의 대상이 책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당시 성인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유가들의 가치관을 포함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무비판적으로 여과없이 받아들이던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전국 시대 중원에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내세우며 토론을 즐기는 문화가 강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노자의 자연관에 심취해 자유 의지를 즐기고 싶었던 장자는 옛사람들의 사유없이 격언과 사상들을 곧이곧대로 외우고 강요하려 드는 유가들의 경직된 태도가 탐탁치 않았나봅니다.
때문에 장자는 기회만 있으면 유가들의 생각,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꼬집고 나섰습니다.
장자는 유가들이 즐겨 쓰는 직설적이고 메마른 표현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늘 유가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을 비틀어 줄 비유를 연구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장자가 유가들을 향해 던지는 비유는 얼핏 넌지시 던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팔짝 뛸 만큼 날카로웠던 것입니다.
장자는 늘 이런 식으로 유가 지식인들의 허를 찔러 댔습니다. 하지만 비판적인 말을 본인의 입을 통해 직설적이며 논리적으로 하는 대신에 우화적 인물을 통해 들려 주었기 때문에 상대방들은 늘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장자의 이야기가 깨소금 맛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꾸준한 관찰은 날카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장자 비유의 날카로움은 기본적으로 장자 자신이 오래도록 길러 온 예리한 관찰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고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자와 같이 비유를 통해 잘못된 것을 논하고 비판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참고 :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동양사상, 2017. 2. 20., 김경일, 황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