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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가 사상이란 무엇인가?

by 갸르송 2024. 1. 12.

도가(道家)사상.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제자백가 중 하나의 사상으로, 보통 대표적인 사상가는 노자 장자로 본다. 노자를 시초로 보지만 노자가 도가를 창시하지는 않았다 .  하지만, 후대 철학자들 중 노자와 장자의 사상 교집합 부분이 꽤나 적으며 '노장사상'이 엄격하게 말하면 맞지 않는다고 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철학자 강신주는 노자는 제왕주의, 장자는 아나키즘에 가깝다고 표현한바 있다.

도가라는 분류가 생긴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비슷해 보이는 사상들을 한 범주로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자양주열자장자/황로학파라는 계보대로 도가가 일관되게 계승해오며 발전해온 사상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도가로 분류된 학자들의 주장에는 일련된 공통점이 있다. [어느 의견이 맞는지 정확하게 나의 시선으로 구분하기 위해 고대 중국어를 새로 공부하여 원서 읽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대 철학자들이 남겨놓은 해석과 주석을 보며 내 시선을 기르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원래 한문 자체가 뜻이 많고 고대 중국어는 더욱 함축적이기 때문에, 해석하기도 각양각색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조삼모사'이야기도 해석이 수가지다.]

 

노자는 초나라에서 기원전 1030~223 시대의 사람이라고 한다. 정확한 자료가 없다보니 범주가 좀 넓다.

남방인 초나라의 문화는 북방 문화와 처음부터 차이가 있었다. 북방의 풍토에서 생긴 《시경》과 초나라의 풍토에서 생겨난 《초사(楚辭)》를 비교하여 읽어보면 그 다름을 알 수 있다. 《초사》에 실린 시들 중 대표적인 작품인 굴원의 〈이소(離騷)〉에는 노심초사해하고 있는 굴원에게 굴원의 누나가 고독하게 성실함을 고수하지 말고 세속 사람들과 동화(同化)되어 어울리는 것이 어떠겠냐고 타이르는 대목이 있다. 《초사》의 한 작품인 〈어부사(漁父辭)〉에서는 홀로 충실하게 결백함을 지키려 고뇌하는 굴원에게 어부는 세속의 진애(塵埃)와 탁한 것을 구분하는것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속 사고들은 참으로 도가적인 사고방식이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논어》에는 초나라의 광인(狂人)을 가장한 접여(接輿)라는 인물이, 정치의 이상에 불타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공자에게 지금의 정세는 정치에 종사하는 것이 위험하니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초나라 격조 노래로 비판하는 말이 있다. 장자에 나오는 방식의 이야기와 참으로 유사하다.

이와 같은 내용들로 미루어 볼 때 초나라 지방에는 도가적 사고방식과 연관된 인생관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꽤나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도가사상도 그러한 사회적, 지리적 배경에서 생겼다고 본다. 모든 철학과 사상은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전반적으로 도가 사상가라고 불리우는 철학자들은 유가를 비롯한 여러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꽤나 많다. 특히 장자에서는 공자가 자주 출연해 여러 수모를 겪는다. 공자라는 존칭 대신 공구나 중니라고 낮춰 불리고, 몇몇 내용도 유가 사상을 고수하는 공자 일행들이 망신을 당하거나 기존의 유가적 태도를 버리는 대신 도가의 사상, 개념을 소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중국사상(中國思想)의 태초기인 춘추 전국시대 이후 유가 사상와 함께 중국 철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파들이다. 

도가는 참된 길, 즉 도(道)['도'는 한자로 길 도자인데, 도로할 때 그 도다. 도로 중 '로'자도 길 로자인데, '로'는 말 그대로 사사람이 걷는 물리적인 길의 뜻만 있지만 '도'는 물리적인 길과 더불어 사람이 올바르게 가야할 길이라는 정신적인 뜻도 있다.]는 인위(人爲)를 초월한 곳에 있으며 그것은 직관에 의해 체득되는 것[도가도비상도. 여러가지 해석이 많지만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게된다.' 즉 도는 인간의 감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우주를 운행시키는 거대한 힘인데, 이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지만 이 힘은 존재하고 이것에 따르는 것이야 말로 참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름 붙인다. 라는 해석이 가능하겠다.] 

- 그 외의 다양한 해석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생각될 수 있는 진리는 절대적 진리라고 할 수 없고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진리는 영원한 진리라고 할 수 없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꼭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도는 사람이 그 '참된 길'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르쳤다.

또 인위를 배제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따를 것을 제안했는데, 배제해야 할 인위 중에서 주된 것은 유가의 도(道)인 인(仁)이나 예(禮)라고 말했다.[오히려 유가 사상을 100년전까지도 국가 사상으로 채택해왔고, 그에 이어 서구화된 지금까지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생소하거나 거부감 들 수도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인간된 도리 집어치우고 예의 없이 싸가지 없게 굴라는거야?' 라는 다소 1차원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 말이 아니라, 지나친 인위와 기준은 오히려 차별과 갈등을 낳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인 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살라는 뜻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표현인데, 유가는 내가 신하라고 가정하면 폭군인 왕에게 목숨걸고 직언하는 스타일이고, 도가는 폭군인 왕과 비슷하게 행동하면서 가까워진 뒤 폭정을 일삼지 못하게 만드는 쪽으로 유도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참 이해가 쏙 쏙 되는 표현력이다.] 

 

결국 도를 이름(정의) 붙일 수 없다고 한 이유도 혼란스럽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유무의 관계로 이루어진 도는 언제나 운동하며 변화하기 때문에 정의(정지)할 수가 없다는 뜻. 그리고 이 유무의 상대적 대립면에 대한 관계성을 정치, 사회, 윤리등의 현실적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가장 훌륭한 덕이면서 도(道) 같은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았다.

 

도가를 정치철학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많이 연구되어 왔는데, 도가에 관한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이들이 도가를 세속에 개입하지 않고 산속에서 나물이나 캐먹고 사는 신선노름하는 사상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도가는 정치 철학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당장 장자의 내용을 몇개만 읽어보더라도 많은 이야기들이 왕이나 정치가들과의 면담이라는 점, 또 도덕경이 오랫동안 제왕학의 교본으로 사용되어왔다는 점도 이를 반증하는 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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