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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 제 1장 소요유

by 갸르송 2024. 1. 16.

대붕

한문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為鳥,其名為鵬。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怒而飛,其翼若垂天之雲。是鳥也,海運則將徙於南冥。南冥者,天池也。

 

한글 해석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의 등도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어서, 떨치고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 이 새는 바다의 흐름에 따라 장차 남쪽 심해로 넘어가니, 남쪽의 깊은 바다란 천지(天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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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소요유편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시작부터 굉장히 난해하고 은유적인 내용이라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대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1.북쪽 깊은 바다를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고, 곤을 각종 세속적인 이분법 등에 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간 군상이며, 붕을 그 무한한 잠재력을 발현하여 초월한 자로 보아서 인간 찬가적인 내용으로 해석한다.
2.이 뒤에 나오는 작은 생물인 '새와 매미'와 대비시켜, 새와 매미는 큰 뜻을 보지 못하는 우매한 인간 군상, 곤과 붕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만물의 변화에 통달한,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인(至人), 성인(聖人), 신인(神人)과 같은 장자에서 이상적으로 도달코자하는 달인을 표현하는 것이다.
3.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더군다나 기원전 300년대의 어떠한 감각적 오락도 없던 시절에 스케일의 거대한 생물인 곤과 붕을 상상하여 등장시키고, 그리고 이 바로 뒤에 인간 기준으로도 작은 생물인 새와 매미를 대비적으로 등장시킴으로서 단순히 '인간의 크고 작다라는 기준은 상대적인 판단이다'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의 입장에서, 높은 곳에서 세상을 조망하라는 것이다.

 

조금 더 독특한 해설일 수도 있다.

4. 물의 쌓임, 바람의 쌓음을 두텁게 하여야 잔 배도 띄우고, 큰 날개도 띄울 수 있다. 겨우 한 잔의 물을 부어놓고, 또는 한 뜀박질을 뛰어 놓고 배를 띄울 듯, 하늘을 날 듯 하지말 일이다.

무던히 구덩이를 파고 또 파서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야하고 거기에 물을 떠 옮겨 수없이 부어 넣어야하고, 물길을 잡아 대어야하고, 무던히 하늘을 향해 뜀박질을 해서 다리도 날개도 튼튼히 해야할 것이다. 그런 과정의 수고로움을 다 거쳐 단련한 후에라야 잔도 띄우고 날개도 펼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의 두터움을 잊으면 안된다.

 

붕새와도 같은 거대한 존재는 그저 쉽사리 되는 것이 아니다. 등의 길이만해도 몇 천리나 되는 붕새마저 원래는 작은 알이었다. 알이 부화되어 물고기가 되고, 수 없이 많은 경험과 시간을 거쳐 몸 길이를 몇 천리로 키웠다. 이 과정을 덕을 쌓는 과정이라고 한다. 덕은 다른 말로 함량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함량을 무한히 키워내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가 되는 과정이 있어야 붕새로 변할 수도 있다. 붕새가 되었을 때 작은 것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소요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을 초월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세속에서 삶을 열렬히 그리고 꾸준히 살아가야만 속세를 초월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하고 기이한 표현인지라 장자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시대라야 SF와 판타지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자극을 받아 상상력을 키워갈 수가 있는데, 기원전 300년에 이런 판타지라니요?

장자는 인간이 지닌 자유가 일상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하게 펼쳐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요.

절대적인 자유, 어떤 인간적인 목적조차 거부하는 절대의 자유, 그런 것을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러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습니다. 달성 가능성보다는 방향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닐까요?

 

장자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상대적인 두 상황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작은 그릇에 담긴 물에는 갈댓잎이나 띄울 수 있을 뿐이지. 커다란 배를 띄우려면 물이 깊어야 하지 않겠나? 바람이 작으면 커다란 새도 무력하게 엎드려 있을 뿐이지. 하지만 거대한 바람을 타고 창공을 향해 떠오르면 파란 하늘을 등에 지고 마음껏 날 수 있지.”

 

얼핏 보면 장자는 무척 허황된 생각을 지닌 사람처럼만 보입니다. 현실 생활에 있어야 할 섬세한 관찰이 부족한 사람처럼도 보이고요. 하지만 장자는 눈에 늘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은 사실 현실적인 것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과정에서 얻어 낸 것들이었습니다. 즉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이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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