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소개-
대종사란 크게 높여야 할 참 스승이라는 뜻으로 도를 가리킨다.
노자에서 사람은 땅을 법도로 삼고, 땅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도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도로 삼고 있으니, 위대한 스승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자는 노자의 이러한 사상을 계승하여 자연이야말로 사람들이 법도로 삼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러한 자연을 따르는 참된 사람의 모습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얘기되고 있다.
근본적인 자기 수양을 통하여 참된 사람에 이르는 것을 내성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덕으로써 나라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외왕인데, 외왕의 문제는 다음 자연에 따르는 제왕편에서 논의될 것이다.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떄, 곡을 하면서 눈물도 흘리지 않고 마음 속엔 슬픔이 없는 듯했고 상을 치름에 있어 서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에 어긋나는 세 가지 일이 있었는데도 상을 잘 치렀다는 평판이 노나라에 파다합니다. 본시 그러한 사실이 없으면서도 그러한 명성을 얻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도무지 이상하기만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맹손 씨는 도리를 다하였고, 예를 아는 사람들보다 훌륭하였다. 사람들은 상을 간단히 치르려 해도 되지를 않는데, 그는 이미 간단히 치르고 있다. 맹손 씨는 살게 된 까닭도 알지 못하고, 죽게 되는 까닭도 알지 못하였다. 먼저 태어나는 것도 알지 못하였고 뒤에 죽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자연의 변화를 따라 사람이 되었으니 자기는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따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살아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어찌 변화하기 전의 상태를 알겠는가? 변화하지 않고 있는 지금 어찌 변화한 뒤를 알 수 있겠는가? 나나 그대가 꿈에서 아직 꺠어나지 않은 자들이 아닐까?
또한 그는 형체의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손상받지 않았다. 마음을 기탁한 몸의 바뀜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정말로 죽는일이 없기 때문이다. 맹손 씨는 독특한 깨달음이 있어서 남들이 곡하니까 자기도 역시 곡은 하지만, 자게에게 합당한 방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몸을 가리켜 자기라고 하지만 그들이 어찌 자기들이 생각하는 자기가 진실한 자기임을 알겠는가? 또한 그대가 꿈에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오르거나, 꿈에 물고기가 되어 못 속에 잠겼었다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꿈에서 꺠어난 것인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꿈인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즐거운 경지에 이르러도 웃으려 들 것이 없으며 즐겁고 웃을 일이 있다면 그것을 물리칠 것 까지는 없는 것이다. 편히 대할 일이나 배척할 일이 닥쳤을 때 변화를 따른다면 비로소 텅 빈 하늘과 한 몸을 이루는 경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맹손재는 죽음을 자연 변화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고서 자기 어머니의 상 조차도 간단히 치렀다. 공자는 자기 제자인 안회에게 죽음과 삶의 참된 모습을 알고 있는 맹손재는 일반적인 예의를 따르는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사람임을 설명하고 있다. 절대로 아무런 차별도 없는 경지에 있어서는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사이에는 구별이 없다. 인생을 꿈으로 보는 사상은 제물론편의 나비의 꿈. 호접지몽 이야기에도 나온다.
공자와 안회의 말을 빌려 한편으로는 유가 사상을 비판하는 것 같다. 예는 도에 비해 인위적이고 세상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허례허식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라는 기준으로 입각하여 맹손재의 행동을 봤을 때는 무뚝뚝하게 모친상을 치른다는 것이 왜 나라에 자자하게 잘 치뤘다고 소문이 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례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도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맹손재의 행동을 봤을 때는 오히려 더 고차원적이고 성숙한 방식으로 모친상을 치룬 것이다.
나또한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울까? 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이전의 장자의 죽음, 장자 아내의 죽음에 이어서 계속해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연속으로 게재하고 있어 일부분 중복되는 내용이 있겠지만, 나는 직접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상하기로서는 울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범죄에 휘말려 희생자가 되었다거나 객사를 했다거나하면 울지는 않아도 더욱 슬프고 갑갑하며 안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자연사를 하게된다면 오히려 축하해야할 일 아닌가? 곱게 죽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복이라고 생각한다.
고생많았다고 속으로 격려해주고 싶다. 비판할 점은 비판해서 반면교사 삼고, 존경할 만한 점은 존경해서 내가 차용해야 될 일이다.
나는 주변 사람 중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회사 동료의 죽음을 경험했다. 외할아버지와는 큰 인연이 없다. 장난끼 많고 유쾌해보였지만 노년에는 노망이 들어 할머니를 폭행하려고 했다. 할머니는 나보고 괜찮다고 했다. 노망난 것을 아는 것이다. 진심으로 해코지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인지 큰 생각은 나지 않는다.
친할머니도 안타깝게도 큰 기억은 없다. 항상 내 손을 잡으며 너 손이 할아버지 손이랑 똑같이 따뜻하다. 장가 잘 가야한다. 좋은 직업 잘 찾아야한다. 등.
따지고보면 친할아버지 또한 큰 교류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나에게 유전자를 가장 물려주신 분이라 크게 영향을 받았지 않았을까 싶다. 친할아버지, 회사 동료의 정신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 더욱 성장해야겠다.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