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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혼돈이 죽다.

by 갸르송 2024. 1. 27.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흘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한다. 숙과 흘이 어느 때,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접하니 숙과 흘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법을 의논하여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을 가지고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는데 혼돈만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에게도 구멍을 뚫어 봅시다."
그리고는 혼돈의 몸에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 나갔는데, 7일만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南海之帝為儵,北海之帝為忽,中央之帝為渾沌。儵與忽時相與遇於渾沌之地,渾沌待之甚善。儵與忽謀報渾沌之德,曰:「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此獨無有,嘗試鑿之。」日鑿一竅,七日而渾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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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몸에 구멍이 없었던 것을 보고 불편해할 거 같아서 통념에 따라 인위적인 힘을 가해 구멍을 내 주었더니 더 편히 살기는커녕 죽어 버렸다는 얘기. 사람을 억지로 어떠한 기준에 맞추지 말고 난 그대로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혹은 혼돈을 사람이 아닌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 상태', 즉 자연 그 자체로 보아서 자연에 인위를 가하는 순간 자연은 스러져 버린다는 은유적인 내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장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현 시대에 말하는 자연보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장자가 살던 시대에는 자연 훼손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생태계를 보호해야한다는 주장과는 맞지 않아보인다.

 

장자가 늘상 얘기하는 자연이란 자연스러운 본성. 즉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선천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본성을 말한다. 인간의 지혜는 문명을 발달시키고, 그 문명은 인간의 본성을 자연으로부터 점점 더 격리시켜 스스로 파멸로 이끈다. 현대병이라고 불리우는 거북목, 근시, 온갖 위장병, 비만 등이 그렇다.

 

가장 큰 예로 현대의 나이키를 주로한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아도 옛날 사람들은 발이 건강했을것이다. 현재의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만 보더라도 매우 발이 건강하다고 한다. 현대 의학에서 규정하는 발 질환인 지간신경종, 무지외반증이 전혀 찾아볼 수 없다한다. 우리의 발은 인간의 신체에 있는 전체 200개의 뼈 중 50개가 발에 있을 정도로 매우 촘촘하고 섬세한 부위이다. 포장도로가 없던 시절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땅을 발 전체를 사용해 걸었을 것이다. 엄지발가락, 새끼발가락, 발뒤꿈치까지 모두 사용해서 튼튼했을 것이다.

인류가 처음에는 발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차원에서 헝겊이나 지푸라기로 만든 신발을 신었을 것이다. 문명이 조금씩 발전해감에 따라 튼튼한 신발을 신게되고, 최근에는 실용성보다는 멋 위주의 신발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앞코가 좁고 뾰족한 구두, 굽이 10cm 가까이 되는 하이힐 등을 신는다.

발의 본연의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것 뿐 아니라 비틀고 휘게 혹사시키는 것이다. 신체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발이 휘면 정수리까지 휜다. 근육, 뼈, 신경, 혈관이 모두 망가진다. 이는 한 번 신발을 잘못 신었다고 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수백시간, 수천시간을 잘못된 습관을 꾸준히 실천해야 나타난다. 

이상이 생기고 난 뒤 정형외과에서 1회 25만원짜리 도수치료를 받고, 척추나 무르페 주사를 놓고 쇠를 박는 수술을 한다.한의원에가서 침, 뜸, 한약 온갖 치료를 다 받지만 다시 재발할 것 같고 뭔가 찜찜하다.  본질적인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은 인간의 발 답게.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용해주어야한다. 그래서 요즘 맨발걷기가 열풍인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그러하다. 심지어 학문이나 사상, 종교, 도덕까지도 인간성을 타락하고 구속시켜 오히려 인간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문명, 지식, 지혜, 지능의 역설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적 하강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이 자기반성을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어야할 문화가 도리어 인간을 구속하고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혼돈에게 일곱개의 구멍을 뚫어주었더니 혼돈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살펴보자. 일곱개의 구멍. 즉, 칠규란 인간이 지닌 감각기관의 구멍 갯수를 말한다. 감각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만큼 정신이 쇠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감각이 본질을 포착하는데 착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고귀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오감이라는 1차원적인 만족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찰해볼 일이다. 문명의 풍요로운 급속한 발전은 정신적 진보를 훨씬 앞질러버렸다. 오로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만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 단지 경제뿐만 아니라 정신의 세계에서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1차원적인 만족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은, 더욱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로 일상을 보내며 평범한 주변인들의 에너지를 좀먹는다. 사회적으로도 손해인 것이다.고차원적인 사람들은 더욱 이타적이고 자기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고, 나누고, 존중한다. 더욱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생기고, 다 함께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미국의 매트릭스 음모론이 있다. 현대인들을 설탕, 튀김음식, 담배 등으로 중독시켜 건강을 약하게 만들고 새로운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시도 자체들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섹스 등의 3s 정책을 펼쳤던 전두환이나, 대중은 당근과 서커스 이 두 가지면 통제하기 충분하다는 말을 남겼던 히틀러를 보면 마냥 음모론 같지도 않아보인다.비약적이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맥락으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면 좌/우, 남/녀, 세대 갈라치기 등 2가지로 양분하여 서로를 부정적인 에너지로 소비하게 만드는게 통치자들의 전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태영건설이 sbs를 팔지 못하고, 언론계에 현 정부에 반하는 의사를 표현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보면 그다지 비약적이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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